“불덩이가 가슴에 들어있어서 한겨울에도 홑옷으로 지내요. 때론 한기가 너무 들어서 한여름에도 털옷을 껴입어야 하구요.” 칠년 시집살이에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아왔건만 자신의 고생을 알아주기는커녕 날로 무심해지는 남편을 대하면서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여 이 병원 저 병원에서 해보라는 검사는 다 해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는 어느 주부는 꾀병이라고 할까봐 몇 번을 망설였지만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를 찾았다며 괴로움을 호소하였습니다.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이 치올라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얼굴이 화끈거림, 열기와 한기가 반복됨, 목에 커다란 덩어리가 막혀 있는 느낌, 온통 속이 답답하고 소화불량에 시달림, 쉽게 짜증나고 사는 재미가 없음, 때론 괜히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문득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드는 이 병을 홧병(火病) 혹은 울화병(鬱火病)이라고 부릅니다.
홧병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민간에서 사용되어오던 용어이면서 또한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식 병명으로 등록된 정신과 질환입니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홧병을 분노의 억제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 고유의 분노 증후군(anger syndrome)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홧병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를 참아내는 과정에서 분노가 쌓이다가 결국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하면 흉부 열감, 전신 동통, 상복부 덩어리 느낌, 우울, 불면, 피로 등의 증상을 나타나는 병입니다.
홧병의 고통스러운 증상들은 대부분 자율신경계와 호르몬의 부조화 때문에 나타납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자율신경계나 호르몬에 이상이 생기는 과정을 정신과에서는 “세리에(Selye) 3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프라하 의대를 졸업한 세리에가 1936년 유명한 학술잡지 네이처(Nature)에 ‘일반적응증후군’이란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대부분의 의사들이나 일반인들은 모든 증상들의 바탕에는 특별한 원인이나 특별한 병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일반적인 스트레스나 스트레스 반응에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세리에는 스트레스가 가해졌을 때 나타내는 신체적 반응을 조사하였습니다.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다가(경고반응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일정 기간은 저항력이 증가하지만(저항기), 결국 저항력이 급속도로 고갈되어 각종 장기가 망가지는(탈진기) 순서를 밟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탈진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자율신경과 호르몬의 문제만 일어날 뿐이지, 심장이나 위장관 등 장기 그 자체에는 큰 이상을 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에 그저 신경성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결국 탈진기에 이르는 것처럼, 과다한 스트레스는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당 수준의 스트레스는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의 적절한 관리는 만병의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에 왕도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방법들, 예를 들어, 규칙적인 운동, 단전호흡, 명상, 기도, 좋은 식사 습관 등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이 마음이 아프다고 알려오면 당신이 먼저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